무로마치 시대에는 오시마 반도의 남단에 야마토인이 도난 12관을 축조해 거주지(야마토지)를 마련했다. 전란을 피해 이주하는 사람이 증가하면서 현지의 아이누와의 사이에 대립이 일어났다. 그 결과 1457년에 일어난 코샤마인 봉기로 다케다 노부히로가 아이누의 지도자 코샤마인을 죽여 야마토의 승리를 결정했다. 노부히로는 가키자키 씨를 계승했고 그 자손은 후에 마쓰마에 씨를 자칭해 대대로 에조치의 남부에 지배권을 구축했다(마쓰마에 번).
마쓰마에 번의 경제 기반은 아이누와의 교역에 있었다. 아즈치모모야마 시대부터 에도 시대에 걸쳐 마쓰마에 씨는 쇼군으로부터 교역 독점권을 인정받아 아이누와의 교역 조건을 스스로에게 유리한 것으로 바꾸어 나갔다. 아이누는 샤크샤인의 난이나 쿠나시르·메나시 봉기와 같은 반란을 일으켰지만 마쓰마에 번에 의해서 진압되었다. 1784년부터는 에조치의 개척을 시작해 연안에 몇 개의 이주지가 건설되었다.